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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이 그윽하니, 물 흐르고 꽃이 피다
운영자  2008-03-04 20:29:06, 조회 : 3,474, 추천 : 233

[작품따라 맛따라]차향이 그윽하니, 물 흐르고 꽃이 피다
# 박태만의 글씨 "차시(茶詩)"
차 한모금에 인생사 희로애락 무상
예부터 茶와 書는 '공존의 일체'
오랜 시간이 빚어내는 보이차 각별

















오래 숙성시킨 보이차는 그윽하고 오묘한 맛이 일품이다. 서예가 박태만씨가 그의 차실에서 보이차를 음미하고 있는 모습(사진 위)과 그의 서예 작품 '차시'.
차물이 끓는다. 파르르 한숨 돌리는 순간, 사위는 절정의 고요함만이 감돈다. 따뜻하게 볕드는 곳에서 정좌하여 차를 다린다. 은은하게 차물이 우러나오자 차향이 갓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음~ 차 한모금에 인생사 희로애락이 부질없어진다. 오욕칠정, 백팔번뇌가 이 차향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듯 차를 마시는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 도(道)의 시간'이 격의 없이 넘나드는 경계다. 차 한잔에 푸른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차 두잔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것이다. 참으로 신묘한 때가 아닐 수 없다.

'靜坐處茶半香初(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묘용시수류화개)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따르니 향기가 피기 시작하고, 신묘한 차향을 맛보고 있으니 물 흐르고 꽃이 피도다.'

추사선생의 차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구다. 혹자는 중국 송나라의 시인 황정견의 시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풍류가의 서실이나 차실에 주련(柱聯·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 차시이다.

자고이래로 차(茶)와 서(書)는 '공존의 일체'라 했다. 글씨를 쓰기 전 차향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글씨를 쓴 후 차 한모금으로 긴장을 푼다. 그래서 차는 '일심의 경지'에 이르는 입구이지 통로라 여기는 것이다.

섬세하면서도 거침없는 일필휘지의 서예가 박태만. 그도 '차서일체(茶書一體)'의 중심에 있다. 일광 동백마을. 그곳에 가면 그의 서실 묵우서숙(墨友書塾)이 있고, 2층 공간에 차를 마시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차실 시우담(時雨潭)이 그것이다.

시우담에서 그와 보이차를 마신다. 녹차와 달리 신선하고 팔랑팔랑한 청량감은 덜하지만, 오래 숙성이 되어 깊고 그윽한 맛이 아주 뛰어나다. 오래된 '군맛'이 입안으로 흐르면서 향취를 더해 준다.

"원래는 녹차를 즐겨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글씨 공부를 위해 몇 년 중국에 있으면서 중국차를 알게 됐죠." "어떤 맛이었습니까?" "글쎄요? 섬세하고 촘촘하달까요? 아무리 마셔도 싫증이 나지 않고 자극이 별로 없어 '조용하게 맛있는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차와 중국차를 비교해 보자면…" "크게 대별해서 우리 차는 대부분 차 잎을 덖어 만든 녹차, 즉 불발효차가 대부분이고요, 중국차는 다양한 차들이 있지만 주로 발효차 위주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맛의 깊이나 향의 경중도 각기 다르고요."

내친 김에 그가 중국차의 종류까지 세세하게 부연을 한다. "차의 색깔로 구분 하자면 녹차, 청차, 홍차, 백차, 황차, 흑차 등등이 있고요, 널리 알려진 차로는 보이차, 오룡차, 철관음, 무위암차류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차를 주로 마십니까?" "보이차가 좋더군요."

"보이차는 손자를 위해서 만드는 차라고 합니다. 족히 20년은 숙성시켜야 그 오묘한 맛을 머금을 수 있으니까요." "시간이 빚어내는 차로군요?" "예, 시간이 곰삭은 맛. 그맛이 바로 보이차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차 한잔에 그가 붓을 든다. 화선지 위, 그의 붓놀림이 활달하다. 기풍이 질풍노도와 같다. 휘달리는 행서의 보폭이 거침없고, 글씨의 짜임새가 정형에서 자유롭다. 급기야 그의 글씨에서 청계수류(淸溪水流), 처처화개(處處花開)의 경지를 본다.

보는 사람마저 왼손에 찻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농하는 여유작작함을 느낀다. 차 한잔과 글씨 한점. 차향과 묵향을 앞에 두고 새삼 그윽하다. 그 그윽함에 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꽃은 피고도 또 핀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




/ 입력시간: 2008. 02.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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